AI 없는 스타트업은 없다…벤처 투자, 이젠 알고리즘 전쟁

지난 1년간 벤처캐피털 업계에서 투자 대상으로 떠오른 모든 스타트업이 인공지능 기술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한 트렌드를 넘어선 변화의 중심에 있음을 보여준다. 인터넷이 산업 전반을 뒤흔들었던 것처럼, AI는 지금 벤처 생태계의 작동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편하고 있다.

적절한 투자처를 발굴하고 진입 시점을 결정하는 것이 핵심 역량인 VC 업계에서 AI는 새로운 동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소규모 펀드부터 대형 운용사까지 AI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기업가치와 수익률이 갈리고, 이는 업계 전반에 걸쳐 전략적 전환을 가속화한다.

투자사 내 운영 효율을 끌어올리는 핵심 요소 중 하나는 AI 기반의 거래 소싱 시스템이다. 예컨대 네비게이트 벤처스(Navigate Ventures)는 매년 1,000건이 넘는 피치덱을 검토하지만, AI 도구를 도입하면서 검토 속도는 물론 투자 가능성이 높은 스타트업에 대한 판별 정확도까지 크게 향상됐다. 챗GPT 딥 리서치(ChatGPT Deep Research), 하모닉(Harmonic), 피치북 AI(PitchBook AI) 등은 기업의 초기 지표 분석부터 창업자 이력, 주력 시장, 제품 전략 등을 자동으로 스캔해 우선순위를 정해준다.

시장 조사와 산업별 경쟁 분석에서도 AI는 강력한 무기로 부상했다. 투자자들은 데이터 트렌드, 인수합병 회수, 신규 고용 지표, 자금 유입 흐름 등을 실시간으로 추적하며 과잉 투자된 영역과 자본이 닿지 않은 틈새 시장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 이는 경쟁사를 기준으로 포트폴리오 기업의 포지셔닝을 벤치마킹하는 데에도 유용하게 작용한다.

딜 구조 설계와 밸류에이션 모델링 단계에서도 AI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과거엔 투자 조건서를 구성하고 검토하는 데 며칠씩 걸렸지만, 이제는 텍스카우트(TechScout), 트랙슨(Tracxn) 등의 도구를 통해 단시간 내에 다양한 시나리오를 돌려 기업 가치와 투자 조건 간 균형점을 도출할 수 있다. 이러한 프로세스는 투자자와 창업자 간의 신속한 의사결정을 도와 시간을 대폭 줄인다.

하지만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투자 결정의 본질은 여전히 인간의 통찰력에 달려 있다. 창업팀의 역학 관계, 리더십 자질, 시장에 대한 감각 등은 정량적 요소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다. 뛰어난 VC라면 결국 숫자 너머의 가능성을 보는 눈과 사람을 파악하는 감각을 갖춘 이들이다.

AI 기술은 벤처 투자에 있어 강력한 에너지원을 제공하지만, 그것이 투자자를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승자는 기술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면서도 '사람을 믿는' 투자의 기본을 잃지 않는 기업들일 것이다. AI 시대의 투자자 본모습은 기계 위에 서 있는 인간이다. 이 둘의 균형 감각이야말로 다음 세대 혁신을 주도하는 진짜 경쟁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