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이 유로 현금의 법적 지위와 접근성을 강화하고 차세대 지폐를 보안·지속가능성·접근성 중심으로 개편한다. 현금과 디지털 유로를 중앙은행 화폐의 두 형태로 함께 유지한다는 구상이다.
피에로 치폴로네(Piero Cipollone) 유럽중앙은행 집행이사회 위원은 14일 브뤼셀 하우스 오브 더 유로 연설에서 “현금과 디지털 형태의 화폐는 서로 보완한다”고 말했다. ECB 연설문은 현금과 디지털 유로를 경쟁 관계가 아닌 공공 화폐의 두 형태로 설명했다.
현재 유로 지폐는 310억장 이상 유통되고 있으며 총액은 1조6000억유로를 넘는다. 연간 유통량 증가율은 약 3%이고, 유로 동전도 1500억개 이상 유통되고 있다.
치폴로네 위원은 현금이 금융 포용성과 프라이버시를 뒷받침한다고 설명했다. 전력·인터넷 장애나 사이버공격으로 전자 결제가 중단돼도 현금은 결제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어 결제 시스템의 회복력을 높인다는 것이다.
유럽중앙은행의 2024년 소비자 결제 태도 조사에서는 유로존 소비자의 62%가 현금 결제 선택권을 중요하거나 매우 중요하다고 답했다. 이는 2022년보다 2%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현금 사용 비중은 줄고 있지만 현금 결제 선택권에 대한 수요는 유지되고 있다. ECB 소비자 결제 태도 조사는 현금의 주요 장점으로 프라이버시 보호와 결제 안정성 등을 제시했다.
현금의 제도적 기반을 강화하는 법안 논의도 진행 중이다. 유럽의회와 EU 이사회는 7월 9일 단일통화 패키지와 관련한 협상 입장을 채택했으며, 패키지에는 유로 지폐·동전의 법정통화 지위와 현금 접근성, 현금 의무 수용에 관한 규정안이 포함됐다. 최종 법제화 시점과 구체적인 의무 범위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ECB는 2024년 기업 현금 사용 조사에서 기업의 현금 수용률이 2021년 96%에서 2024년 88%로 낮아졌다고 밝혔다. 다만 현금을 현재 받는 기업의 94%는 앞으로도 계속 현금을 수용할 계획이라고 ECB가 조사했다.
ECB는 현금과 함께 디지털 유로도 추진하고 있다. 두 수단 모두 중앙은행이 발행하고 보증하는 공공 화폐라는 점에서 유럽인의 결제 선택권과 통화 주권을 뒷받침한다는 설명이다. 본지는 앞서 디지털 유로의 2029년 발행 목표와 개인정보 접근 제한 논의를 보도했다.
차세대 유로 지폐는 위조 방지 기술과 지속가능한 소재를 적용하는 방향으로 설계된다. 시각장애인을 포함해 누구나 지폐를 쉽게 식별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도 개선한다.
디자인 주제는 ‘유럽 문화’와 ‘강과 새’로 정해졌다. ECB는 7월 23일 차세대 지폐 디자인 후보 10개를 공개했고, 시민 의견을 묻는 온라인 설문을 9월 21일까지 진행했다. 설문에는 900만명 이상이 참여했다.
ECB 정책위원회는 2026년 말 무렵 최종 디자인을 결정할 예정이다. 이후 추가 개발과 시험, 생산 절차가 진행되며 새 지폐가 실제 유통되기까지는 수년이 걸릴 전망이다. ECB 차세대 지폐 안내에 따르면 실제 유통 시점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서도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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