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와 에너지·원자재 가격 충격이 이어지면서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인플레이션과 고용 사이에서 더 어려운 선택에 직면할 수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인공지능(AI) 투자로 수요까지 과열되면 통화정책 대응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경고도 제기됐다.
오스턴 굴스비(Austan Goolsbee)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총재 겸 최고경영자는 21일 런던 OMFIF 행사에서 “이런 충격이 실제로 약해지고 있다는 증거가 필요하다”며 “그렇지 않으면 인플레이션을 2%로 되돌릴 신뢰할 만한 경로를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OMFIF는 행사 주제를 인플레이션 위험과 경제 성장 사이의 통화정책 균형으로 제시했다.
굴스비 총재는 관세와 에너지 가격, 원자재 가격 상승이 예상보다 오래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공급 충격이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으면 연준이 물가 상승을 단순한 일시 요인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미다.
공급 충격에 대응한 금리 조정은 고용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 필립 제퍼슨(Philip N. Jefferson) 연방준비제도 부의장은 7월 연설에서 물가 안정과 고용 목표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일 경우 금리 인상이 물가를 낮추는 대신 고용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리 인상은 수요를 둔화시켜 물가 상승 압력을 낮추는 수단이지만, 기업 투자와 고용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공급 측 요인으로 물가가 오르는 국면에서는 통화정책의 효과와 부작용을 함께 따져야 한다.
미국 인플레이션은 7월 기준 3.7%로 연준의 장기 목표인 2%를 웃돌았다. 연준은 9월 16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해 목표 범위를 3.75~4.00%로 조정했고, 당시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굴스비 총재가 인플레이션을 2% 목표로 되돌릴 증거를 강조한 발언은 앞서 인플레이션 2% 목표와 금리 인하 조건을 언급한 발언의 연장선에 있다. 다만 이번 발언만으로 연준의 다음 정책 결정을 확정할 수는 없다.
AI 투자도 통화정책의 새로운 변수로 거론됐다. 굴스비 총재는 AI 관련 투자가 생산능력 확대보다 빠르게 수요를 끌어올려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수요가 과열되면 연준의 대응 방식에는 모호함이 없다”고 밝혔다. 수요 과열이 확인될 경우 물가 안정을 위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시카고 연방준비은행은 9월 발간한 ‘The AI Revolution and Monetary Policy’에서 AI에 대한 기대가 소비와 투자를 앞당기면 생산성 개선보다 수요가 먼저 과열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대로 생산성 상승이 먼저 나타나면 생산 비용과 인플레이션을 낮출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AI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투자 확대와 생산성 개선 가운데 어느 쪽이 먼저 나타나는지에 달려 있다. 투자와 소비가 앞서면 단기 물가 압력이 커질 수 있지만, 생산성이 먼저 개선되면 비용 하락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 발언은 연준의 이중 책무가 다시 충돌할 수 있다는 점도 부각했다. 물가를 2%로 낮추려면 수요를 제약해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고용이 약해질 수 있다.
가상자산 시장에서도 이번 발언을 금리 인상 신호로 해석할 수 있지만, 발언 직후 가격이 움직였다고 단정할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21일 비트코인(BTC)이 약 8만1360달러, 이더리움(ETH)이 약 2666달러에 거래됐다는 시장 게시물이 공유됐지만, 굴스비 총재의 발언에 대한 직접 반응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 사안은 국내 투자자에게도 미국 물가와 연준 정책, AI 투자 흐름이 가상자산 시장의 주요 변수로 함께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특정 자산의 가격 방향을 이번 발언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굴스비 총재는 올해 금리 결정 투표권이 없는 인사다. 향후에는 공급 충격이 실제로 완화되는지와 AI 투자가 수요·생산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이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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