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가상자산 거래 봇 강의로 위장한 사기가 피해자 224명의 지갑에서 274.60 이더리움(ETH)을 빼돌린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가 직접 스마트 계약을 배포하고 자금을 넣게 한 점이 기존 피싱형 지갑 탈취와 다른 특징이다.
TRM Labs는 9월 14일 보고서에서 올해 2월부터 8월까지 피해자들이 배포한 계약에서 274.60 ETH가 빠져나갔다고 밝혔다. 탈취액은 당시 기준 51만7205달러(약 7억1426만원)이며, 자금은 운영자가 관리한 6개 주소로 모였다.
TRM Labs는 피해자가 배포하고 자금을 넣은 스마트 계약 234개를 확인했다. 가장 이른 피해는 2월 12일, 가장 최근 피해는 8월 11일 발생했으며 피해액 중앙값은 1 ETH였다.
강의는 클로드(Claude)를 활용해 자동 가상자산 차익거래 봇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준다고 홍보했다. 영상에는 지갑 생성, 소스코드 복사, 스마트 계약 배포, 자금 투입 과정이 차례로 등장했다.
피해자는 강의 안내에 따라 각 거래를 자신의 지갑으로 승인했다. 강의가 초기 자금으로 1~2 ETH를 요구한 점은 피해액 중앙값이 1 ETH로 집계된 결과와 맞물린다.
문제는 코드 컴파일러였다. 강의가 안내한 사이트는 리믹스(Remix)와 비슷한 화면을 제공했지만 사용자가 붙여 넣은 코드를 실제로 컴파일하지 않았다.
일부 변형에서는 백그라운드 스크립트가 입력 코드를 버리고 운영자 서버에서 다른 계약을 받아 배포했다. 이용자는 화면에서 코드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아채기 어려웠다.
블록체인에 올라간 계약은 입금된 자산을 운영자에게 보내는 허니팟으로 설계됐다. 피해자가 ‘Start’ 또는 ‘Withdraw’ 버튼을 누르면 0.05 ETH를 넘는 잔액이 운영자 주소로 전송됐다.
TRM Labs는 이 과정에 피싱 링크나 악성 승인 요청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피해자가 자신의 지갑으로 계약 배포와 자금 전송을 직접 승인했기 때문에 일반적인 피싱·악성 승인 탐지 신호가 나타나지 않은 구조다.
한 컴파일러 사이트는 자금이 사라진 뒤 가짜 오류 메시지도 띄웠다. ‘차익거래가 멈췄다’며 원래 투입액의 50%를 추가로 넣으라고 안내하는 방식이었다.
보고서에 등장한 ‘가스 논스 유동성’이라는 표현은 이더리움의 실제 개념이 아니며, 배포된 계약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전문 용어처럼 보이는 표현으로 피해자의 의심을 낮추려 한 셈이다.
영상 9개는 서로 다른 제작자가 만든 것처럼 게시됐지만 대본과 화면 순서가 거의 같았다. 일부 영상은 AI로 만든 진행자와 음성을 사용했고, 댓글에는 조작된 것으로 보이는 긍정적인 이용 후기가 포함됐다.
영상 설명에 연결된 문서는 서로 다른 저장소에 올라갔지만 지갑을 준비하고 봇에 유동성을 넣은 뒤 실행하라는 흐름은 같았다. TRM Labs는 이들 영상이 2026년 9월 기준 누적 31만474회 조회됐다고 집계했다.
앞서 같은 방식의 사기에는 챗GPT가 미끼로 사용됐으며 이번에는 클로드 이름으로 바뀌었다. AI 서비스 이름만 달라졌을 뿐 피해자가 직접 코드를 실행하고 자금을 넣도록 유도하는 구조는 유지됐다.
탈취된 자금은 중앙화 거래소를 거치지 않았다. 일부는 탈중앙화 금융 서비스에서 다이(DAI)로 교환됐고, 일부는 여러 블록체인 간 브리지와 믹서를 통과했다.
이번 사건은 지갑 연결이나 승인 권한만 점검하는 방식으로는 피해를 막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본지가 앞서 지갑 드레이너를 이용한 가짜 사이트 사례를 전한 것처럼, 이용자가 직접 서명하거나 자금을 전송하는 단계도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
스마트 계약은 블록체인에 배포된 코드에 따라 자산 이동을 자동으로 실행한다. 따라서 코드와 배포 경로가 신뢰할 수 있는지 확인하지 않은 채 자금을 넣으면 지갑 연결 경고가 작동하지 않아도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이번 피해는 2월부터 8월까지 이어졌고, 보고서는 9월 14일 공개됐다. AI 거래 봇을 내세운 강의와 컴파일러를 이용해 이용자가 직접 계약을 배포하도록 유도하는 수법이 확인된 사례다.


최윤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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