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은행권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규제를 무조건 완화하기보다 국경 간 자본·유동성 이동을 막는 분절부터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에마뉘엘 물랭(Emmanuel Moulin) 프랑스은행 총재는 18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열린 Eurofi 연설에서 유럽연합(EU) 은행권의 경쟁력 회복을 위한 과제로 △국경 간 통합 △건전성 규제 체계의 단순화 △유럽 경제의 투자 수요에 맞춘 규제 조정을 제시했다.
유럽 은행들은 높은 자본과 유동성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기업·투자은행 시장에서는 경쟁력을 잃고 있다는 진단이다. 물랭 총재는 제3국 금융그룹이 유럽 고객에게 제공하는 기업·투자은행 서비스 비중이 60%에 이른다고 밝혔다. 반면 유로지역 전체 대출에서 국경 간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5% 미만이라고 설명했다.
물랭 총재는 “국경을 넘는 은행그룹의 자본과 유동성 통합 관리를 더 잘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별 자회사 단위로 자본과 유동성을 관리하도록 한 구조가 은행그룹의 규모 확대와 자원 배분을 제약하고 있다는 의미다.
핵심 제안은 국경 간 자본·유동성 면제 제도를 확대하는 것이다. 다만 위기 상황에서 모회사가 자회사를 지원하도록 하는 안전장치가 전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물랭 총재는 예금보험체계의 추가 진전이 바람직하지만, 이를 은행 통합의 선결 조건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유럽중앙은행(ECB)은 4월 발표한 제안에서 유로지역을 금융 규제 측면의 단일 관할권처럼 운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ECB는 국경 간 유동성 면제가 없으면 은행그룹 내부에서 약 2300억유로 규모의 고유동성자산 이동이 제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규제 단순화는 규제 철폐와 다르다는 점도 강조됐다. 물랭 총재는 바젤Ⅲ의 일관된 이행과 위험 기반 규제를 유지하면서 중복된 자본요건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은행감독청(EBA)은 6월 자본요건과 완충자본, MREL·TLAC 등 여러 규제 층위를 하나의 체계로 재검토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도 7월 은행 부문 경쟁력 보고서에서 국가별 규정과 중복 보고를 줄이고, 출력 하한과 무등급 기업·주택담보대출의 자본요건을 재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출력 하한은 은행의 내부모형을 활용한 위험가중자산 산정액이 표준모형 산정액의 일정 수준 아래로 내려가지 않도록 제한하는 제도다.
유럽금융시장협회(AFME)는 유럽 은행이 단일시장처럼 영업하기 어렵다는 진단에 공감했다. 다만 은행 규모 확대만으로 경제적 성과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통합과 규제 단순화가 필요하지만 금융안정 장치도 함께 작동해야 한다는 취지다.
국경 간 자본·유동성 면제와 예금보험체계 통합, 자본요건 조정이 실제 입법으로 이어질지가 후속 과제로 남았다.

최윤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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