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의 운송용 연료·윤활유 가격이 2026년 6월 전년 동월보다 13.7% 상승했다. 그러나 같은 달 디젤 가격은 전월보다 6.4% 하락해 최근의 가격 흐름을 중동발 지정학적 충격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왔다.
다니엘 라칼레(Daniel Lacalle) 경제학자는 13일 공개한 분석에서 유럽의 정제능력 감소와 수입 의존도 확대가 디젤시장 취약성을 키웠다고 주장했다. 높은 세금과 탄소비용, 러시아산 석유제품 제재도 공급 충격을 키운 요인으로 지목했다.
유로스타트는 2026년 6월 EU 운송용 연료·윤활유 가격이 전년 동월보다 13.7% 올랐다고 밝혔다. 4월과 5월 상승률은 각각 20.8%, 20.7%였지만, 디젤 가격은 5월보다 6.4% 내렸고 EU 회원국 모두에서 하락했다. 유로스타트 통계는 연간 상승과 월간 하락이 동시에 나타났다고 집계했다.
연간 상승률과 월간 하락률이 엇갈린 것은 가격 수준과 단기 흐름이 다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라칼레는 전쟁이나 지정학적 충격이 가격 변동을 촉발할 수 있지만, 정제능력과 재고, 수입선, 세금 구조가 충격이 실제 가격에 얼마나 반영되는지를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 정제능력 감소와 수입 의존도
영국의 에너지 공급 여건에서는 생산 감소와 수입 확대가 함께 나타났다. 영국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원유와 천연가스액 생산량은 2024년 3040만톤으로 전년보다 8.9% 줄었고, 같은 기간 영국의 순 원유 수입은 11.7% 늘었다.
북해 생산은 1999년 정점을 찍은 뒤 감소했다. 영국 정부 보고서는 이를 성숙 유전의 자연적 쇠퇴와 관련된 현상으로 설명했다.
정제시설 축소도 공급 경로를 바꾸고 있다. 영국에서는 그랜지머스 정유시설이 수입 터미널로 전환됐고, 프락스 린지 정유시설은 정제 작업을 중단했다. 영국 정부는 기존 거래 파트너와의 수입을 통해 원유 공급 안보를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정제시설은 원유를 디젤과 휘발유 등 석유제품으로 바꾸는 중간 단계다. 정제능력이 줄면 원유를 확보하더라도 필요한 제품을 공급하기 위해 수입 의존도가 높아질 수 있으며, 지역별 제품 가격이 원유 가격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여지도 커진다.
◇ 러시아 제재와 탄소비용
EU의 러시아산 에너지 제재는 정제제품의 조달 경로에도 영향을 줬다. EU는 2022년 12월부터 러시아산 해상 원유 수입을 제한했고, 2023년 2월부터는 러시아산 정제 석유제품 수입을 제한했다.
제3국에서 러시아산 원유를 정제한 제품의 우회 수입을 막는 조치도 추가됐다. EU 이사회는 제재 대상에 원유와 정제 석유제품이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러시아 제재와 정제능력 감소가 디젤 가격에 각각 얼마만큼 영향을 줬는지는 공식 자료로 분리되지 않았다. 라칼레의 분석은 정책 선택이 공급 충격을 키웠다는 인과관계를 제시하지만, 정책별 가격 기여도를 수치로 나눈 공식 연구는 확인되지 않았다.
탄소비용도 향후 변수로 거론된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건물과 도로교통, 일부 소규모 산업을 대상으로 하는 ETS2를 2027년 전면 가동할 예정이다.
ETS2는 연료 공급업체가 배출권을 제출하도록 하는 제도다. 비용이 최종 소비자에게 얼마나 전가될지는 탄소가격과 시장 구조에 따라 달라지며,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ETS2가 2027년 전면 가동될 예정이고 2026년 가스·유가가 예외적으로 높으면 2028년으로 연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ETS2 안내
국내 독자에게도 유럽의 디젤 가격 흐름은 원유 가격만으로 정제제품 가격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참고할 만하다. 정제시설 가동과 폐쇄, 수입선 변화, 제재, 탄소비용이 함께 작용하기 때문에 같은 기간 원유와 디젤 가격이 반드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앞서 본지도 정제유 압박이 원유보다 커진 현상을 보도했다. 이번 통계는 유럽에서 운송용 연료의 연간 가격 상승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디젤 가격은 단기적으로 하락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원문에 제시된 미국 소매 디젤 가격과 정유시설 가동률, 중동 정제시설 차질, 러시아의 2026년 6월 해상 디젤 수출량 등 일부 수치는 공식 원자료와의 일치 여부가 추가로 확인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기사에서는 유로스타트와 영국 정부, EU 이사회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확인한 수치와 정책 내용만 중심으로 다뤘다.

서지우 기자
댓글0
첫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