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지 이용자가 입금 주소와 출금 주소를 같은 지갑에서 파생했다는 사실을 시드 구문이나 개인키 공개 없이 증명하는 영지식증명 방식이 제안됐다. 이 방식은 출금 주소가 공격자에 의해 바뀌는 문제를 겨냥하지만, 실제 브리지와 거래소에 적용된 사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아메리칸포트리스(AmericanFortress) 연구진 빈첸초 보타(Vincenzo Botta), 미할 포스피에샬스키(Michal Pospieszalski), 에마누엘레 라뇰리(Emanuele Ragnoli), 저스터스 랜비어(Justus Ranvier)는 ‘Provenance Proofs: Linkable, Post-Quantum ZK Derivation Relations for Blockchain DeFi, Wallet and Identity Systems’ 연구를 공개했다. 연구 내용은 24일 공개된 소개 자료와 관련 보도에 담겼다.
핵심은 여러 블록체인 주소가 같은 암호학적 비밀에서 파생됐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이용자는 지갑의 시드 구문과 개인키, 다른 주소, 파생 경로를 공개하지 않고 선택한 주소 사이의 관계만 증명할 수 있다.
주요 적용 사례로는 비트코인(BTC) 입금 주소와 솔라나(SOL) 출금 주소가 제시됐다. 비트코인은 secp256k1, 솔라나는 Ed25519라는 서로 다른 암호 체계를 사용하기 때문에 두 주소가 같은 사용자의 지갑에서 나온 것인지 공개키만으로 확인하기 어렵다는 전제다.
이용자는 비트코인 입금 주소와 솔라나 출금 주소가 동일한 비밀에서 파생됐다는 증명을 제출한다. 브리지는 증명을 검증한 뒤 출금을 처리하며, 다른 주소로 바뀐 출금 요청에는 정상적인 증명을 만들기 어렵다는 구조다.
연구진은 공개 범위를 달리한 세 가지 방식을 제안했다. 선택한 주소 관계만 확인하는 방식, 나중에 소유자가 관계를 공개할 수 있도록 약속값을 남기는 방식, 같은 지갑에서 나온 증명을 지속적으로 식별하는 태그 방식이다.
성능에는 제약이 있다. 관련 설명에서는 전체 경로 증명 생성에 약 6.7초, 검증에 약 475밀리초가 걸리는 것으로 제시됐다. 비트코인과 솔라나를 함께 검증하는 경우 두 개의 전체 경로 증명 생성에 약 13.3초가 필요하며, 두 증명을 연결하는 별도 단계의 성능은 측정되지 않았다.
증명 파일 크기도 크다. 전체 경로 증명은 약 9.7MB, 두 체인을 묶은 증명은 약 19MB로 제시됐다. 모바일 지갑이나 저사양 기기, 거래 빈도가 높은 서비스에 적용하려면 처리 시간과 전송량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
미할 포스피에샬스키(Michal Pospieszalski) 아메리칸포트리스 CEO는 “크로스체인 브리지에서 자금을 훔치는 일을 훨씬 어렵게 만든다”고 말했다. 이는 회사 측의 효과 주장으로, 실제 운영 환경에서 독립적으로 검증된 결과와는 구분된다.
영지식증명은 거래나 지갑의 전체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특정 사실이 맞다는 점만 증명하는 암호학 기술이다. 이번 제안은 브리지 외에도 거래소의 선택적 지갑 확인, 감사 대상 거래만 공개하는 절차, 새 결제 주소가 기존 지갑과 연결됐는지 확인하는 용도를 제시한다.
다만 이 방식은 입금자와 출금자가 반드시 같아야 하는 서비스에 적합하다. 이용자가 다른 사람의 주소로 자산을 보내는 정상적인 거래까지 제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선 선행 연구 ‘ZKPoSP’는 IACR ePrint에 등록된 프리프린트다. 관련 선행 연구는 포스트퀀텀 보안성을 ‘추측된다(conjectured)’고 표현하고 있어 양자내성이나 실전 보안성을 확정된 사실로 쓰기는 어렵다.
또한 제안된 증명은 브리지 보안 전반을 해결하지 않는다. 검증자 키 탈취, 스마트계약 취약점, 메시지 검증 오류처럼 주소 변경과 별개로 발생하는 공격은 여전히 다른 보안 체계의 대상이다.
아메리칸포트리스는 앞서 기존 지갑의 주소 변경 없이 양자 공격 위험을 낮추는 영지식증명 보호 방안을 제안한 바 있다. 이번 연구는 같은 계열의 기술을 서로 다른 블록체인 주소의 소유 관계 확인과 브리지 출금 검증으로 확장한 내용이다.
이 기술이 실제 서비스에서 쓰이려면 증명 생성 시간과 파일 크기, 이용자가 다른 주소로 출금하는 거래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특정 브리지나 거래소의 도입 발표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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