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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하의 불개미리포트]
분자파수꾼

EU, 가상자산 시장 활성화 움직임
美·日에선 금융상품…기업 주도 시장 육성
韓 금융위 "금융자산 아니다" 선긋기

미국·유럽·일본 등 금융 선진국들이 잇따라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암호화폐) 시장 육성 정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가상자산을 제도권 금융자산으로 인정하고 파생상품 시장까지 열어주거나, 관련 기술을 보유한 업체들을 보호하는 모습입니다. 특히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가상자산에 보수적이었던 유럽연합(EU)도 최근 시장 활성화를 위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가상자산과 관련된 규제를 담은 '특정금융정보의 보고 및 이용에 관한 법률(특금법)'이 지난 3월 국회를 통과, 내년 3월 시행 예정에 있는데요. 금융위원회는 "특금법은 가상자산사업자에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목적일 뿐, 금융사업자의 지위를 부여하거나 제도권에 편입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습니다.

이미 앞서나간 美·日…전체 가상자산 시장 90% 차지

2014년부터 가상자산 관련 법안을 마련하기 시작한 미국과 일본은 이미 앞서 나가고 있습니다.

미국은 2017년 시카고선물거래소(CME)가 비트코인 선물거래 상품을 내놓은 뒤로 관련 거래량이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특히 후발주자로 뛰어든 뉴욕증권거래소(NYSE) 모회사 산하 비트코인 선물 거래소 '백트(Bakkt)'도 지난 15일 하루 선물거래량이 1만5995비트코인(약 2046억원)을 기록,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며 비트코인 선물거래소의 신흥 강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미국 나스닥시장 상장사 마이크로스트레티지는 지난달 2억5000만달러(약 2912억원) 어치의 비트코인을 매입했습니다. 이어 지난 14일 비트코인 추가 매입을 위해 자산 정책을 변경, 1억7500만달러(약 2038억원)규모의 비트코인을 또다시 사들였다는 소식에 주가가 급등하는 현상까지 나타났습니다.

일본은 기존 금융상품을 다루기 위해 존재하는 금융상품거래법과 결제서비스법을 지난해 개정, 가상자산을 금융상품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파생상품 거래 등도 허용하며 미국과 마찬가지로 관련 제도를 발빠르게 만들어 대기업 주도로 관련 시장을 키우고 있죠. 국내 IT(정보기술) 대기업인 카카오와 네이버 마저 일본 자회사를 통해 가상자산 서비스를 육성하고 있을 정도로 가상자산 관련 서비스에 친화적입니다.

또 최근 아베 신조 전 총리의 뒤를 이어 일본의 새 총리가 된 스가 요시히데도 '친(親) 가상자산계(系)'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스가 총리는 관방장관이었던 2014년 3월 비트코인에 대해 "화폐가 아닌 재화"라고 강조하며 일본 내 가상자산 제도화를 주도한 인물로 평가받아 왔습니다.

지난 15일 그가 일본 총리로 사실상 확정됐다는 소식에 비트코인 가격이 3% 급등하기도 했습니다.

미국과 일본의 가상자산 시장 선점은 수치로도 증명됩니다. 21일 가상자산 관련 통계사이트 코인힐스에 따르면 전세계 국가 통화별 비트코인 거래량의 70.99%를 미국 달러가, 19.7%를 일본 엔화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전체 거래량의 90%를 미국과 일본이 독식하고 있는 겁니다.

금융위 "가상자산, 금융상품 아냐" 선긋기

반면 우리 정부의 가상자산 관련 정책 대응은 지극히 소극적입니다. 지난 3월 가상자산 관련 규제를 담은 특금법이 국회를 통과해 내년 3월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금융위는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부과하기 위한 것이 목적일 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습니다.

국내 가상자산 업계가 특금법 제정을 놓고 제도권 편입 등의 기대감을 드러내자 이에 대해 불쾌감을 내비친 겁니다.

불과 2년 전인 2018년만 해도 정부는 "가상징표(가상자산)는 도박이며 거래소를 폐쇄하겠다"라는 식의 발언을 했습니다. 가상자산을 거래하면 사실상 범죄자로 간주하겠다는 주장까지 했었죠.

그 결과 세계 1위 수준이었던 국내 가상자산 업계는 그야말로 벼랑 끝까지 갔습니다. 대부분의 업체들이 폐업했고, 업계 인재들은 해외로 떠났습니다. 가상자산 시장 주도권은 미국과 일본에 빼앗긴지 오래입니다.

그러나 정부는 올 들어 언제 그랬냐는 듯 슬그머니 특금법을 제정하고, 20%의 양도소득세까지 걷겠다고 말을 바꿨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위가 추가로 '가상자산 업계 기죽이기'를 또 했어야 했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게 사실입니다.

20년 전에는 이메일이 불법이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우편법상 우체국이 아닌 개인이 유상으로 서신을 전달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였습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러한 과오를 반복해야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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