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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기대 커지는 간접투자
분자파수꾼



우리가 어떠한 자산이나 상품에 투자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자신이 직접 계좌를 만들고 그 계좌에 입금한 자금으로 원하는 자산을 주문해 직접 사고팔아 이익을 내는 직접투자가 첫 번째입니다. 반면 전문가 집단인 금융회사에 돈을 맡기면 그 금융사가 투자자를 대신해 투자해 이익을 내주는 간접투자가 두 번째 방식입니다. 이 간접투자가 바로 펀드입니다. 


 

안전하고 쉬운 간접투자, 가상자산의 숙제

 



이를 여름휴가에 비유해 볼까요. 직접투자는 어디로 휴가를 갈지, 휴가지에서는 어떤 곳들을 방문하고 여행 중엔 뭘 타고 갈지, 어디서 자고 뭘 먹을지 등 모든 결정을 여행자 스스로가 내리는 것이죠. 반면 간접투자는 전문가가 이 모든 걸 대신해 주는 것입니다. 수익을 내준 전문가에게 수수료와 성과에 따른 보수를 줘야 한다는 단점이 있긴 해도, 투자가 간편하고 (이 분야 전문가가 운용해 주니)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특히 투자를 잘 모르는 초보자들이나 해당 자산에 낯선 투자자들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렇게 난데없이 직접투자와 간접투자 얘기를 꺼낸 건, 주식이나 채권, 외환, 원자재 등과 달리 가상자산 시장이 아직 덜 성숙한 원인을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사실 가상자산 시장에서도 꾸준히 간접투자를 활성화하고자 노력해온 게 사실입니다. 이미 4~5년 전부터 많은 운용사들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을 기초로 하는 상장지수펀드(ETF)를 출시하기 위해 시도했지만 번번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승인을 얻어내지 못했습니다. 이는 특정 지수 수익률을 따라가는 인덱스펀드를 주식시장에 상장시켜 투자자들이 주식처럼 편하고 저렴하게 거래할 수 있도록 한 간접투자 상품인데요. SEC는 가상자산 시장에 아직 투기가 많고, 일부 세력에 의한 가격 조작도 존재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선물시장도 충분히 커지지 않아 현-선물 간 가격 견제와 조정기능도 모자란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려면 앞으로도 최소 1~2년은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자산운용 공룡` 피델리티의 비트코인 펀드 도전

 



그런 점에서 일반화된 주식형펀드나 채권형펀드처럼 불특정 다수 투자자들에게 자금을 모아서 전통적 자산에 고루 투자하는 일반 펀드상품이 훨씬 더 당국 승인을 받아내기 쉬울 것이며, 이 시장이 먼저 발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가운데 `글로벌 펀드시장의 공룡`으로 불리는 피델리티(Fidelity Investments)가 가상자산을 굴리는 펀드상품을 내놓겠다며 도전장을 내밀어 관심과 기대를 높이고 있습니다. 

 

피델리티는 지난 2017년부터 비트코인을 강력하게 지지해 주는 초기 기관투자가로 주목받았고 그 해에 곧바로 조직 내에 팀을 만들어 가상자산 시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왔습니다. 그러다 작년엔 뉴욕주에서 비트라이선스를 따내 직접 일부 자금을 가상자산에 투자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가상자산에 투자하려는 기관투자가들을 위한 커스터디(Custody, 수탁 및 관리) 서비스도 작년 말부터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피델리티는 현재 운용하고 있는 고객 자산만 무려 8조 3,000억 달러(원화 약 9,830조 원)에 이르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입니다. 피델리티 투자 전략 총괄인 피터 주버(Peter Jubber) 이사는 SEC에 펀드 출시를 위한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밝혔습니다. 


 

가상자산 투자 늘리는 기관 공략 나서

 



일단 이 신청서에는 가상자산에 투자하는 펀드를 어떻게 만들겠다는 구체적인 언급은 나와있지 않습니다만, 운용자금을 비트코인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것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아직 이 펀드에 자금을 맡기기로 한 고객은 없지만, 펀드가 승인을 받아서 실제 출시되고 나면 고객 확보 전략을 세울 예정입니다. 다만 최소 투자액으로 10만 달러(원화 약 1억 1,850만 원) 이상을 펀드에 넣어야만 한다고 돼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주로 기관투자가와 비교적 여유자금이 있는 적격 개인투자자들이 대상이 될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기관투자가들이 가칭 `비트코인 펀드`에 자금을 넣을 것인가가 관건일 텐데요. 실제 피델리티는 매년 미국과 유럽 기관투자가들을 상대로 가상자산 투자에 관한 설문을 진행합니다. 올해에도 지난 6월 중순 800곳에 이르는 기관들을 상대로 조사를 실시해 결과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응답 기관의 36%가 이미 가상자산에 투자하고 있다는 결과나 나왔습니다. 특히 유럽 기관들의 45%가 투자하고 있었던 반면 미국 기관들 중 가상자산에 투자하는 곳은 27%에 머물렀습니다. 일반적인 은행과 증권사보다는 헤지펀드와 벤처펀드, 자산운용사나 투자자문사 등 고객 자산을 대신 굴려주는 기관들이 더 적극적으로 가상자산을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미국 기관들의 경우 1년 전 설문조사 당시에 답한 22%에 비해 불과 5% 포인트 늘어나는데 그쳤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유럽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투자하는 미국 기관들을 설득해 투자를 유도하는 쪽으로 전략을 세울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가상자산 중 25%는 비트코인으로 가장 인기가 있었고, 이더리움이 11%로 그 뒤를 이은 만큼 시가총액 상위 가상자산에 집중 투자할 것으로 보입니다. 


 

가상자산 시장, 두 바퀴로 힘차게 성장할 듯

 



아울러 이번 설문에서 기관투자가 60%는 자신들의 투자 포트폴리오 내에 가상자산이 포함돼 있다고 답했습니다. 이 중에서 40%는 가상자산이 대체투자상품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답했고, 20%는 가상자산이 그 자체로 독립적인 투자상품이라고 답했습니다. 이처럼 대체투자로 여기는 기관이 많다는 건, 상대적으로 유동성이 풍부한 헤지펀드와 사모펀드(PEF), 부동산펀드 등이 포트폴리오 내 수익성을 높이고 수익률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비트코인 등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건데요. 피델리티가 이들을 상대로도 펀드 영업에 나설 것으로 예상됩니다.

 

시장은 통상 직접투자와 간접투자라는 두 바퀴를 통해 굴러 갑니다. 두 바퀴가 함께 굴러야 더 빠르고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 가상자산 시장은 사실상 직접투자라는 하나의 바퀴로만 굴러온 겁니다. 그러니 투기가 개입하게 되고 돈을 잃는 사람들도 늘고, 단기 시장 상황에 따라 가격 변동도 커지고 개인과 큰손들 간에 정보 비대칭도 심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다른 전통적인 자산에 비해 가상자산 시장이 성장할 수 있는 여력이 훨씬 더 크다고 볼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가상자산 시장 내에 간접투자가 본격 유입되는 것이야말로 이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모멘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피델리티의 성과에 큰 희망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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