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붐이 인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정부는 방관하는 모양새다. 기반기술인 블록체인에 대한 육성을 외치고 있지만 정작 암호화폐공개(ICO)를 금지하는 등 오히려 생태계 발전을 가로막는 정책으로 시장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 시점에서 암호화폐 투자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앞으로 정부가 어떤 규제를 내놓을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다. 현재 한국에서 암호화폐를 규제하는 기관은 크게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금융위원회로 나뉜다. 각 기관은 소비자 보호 방침에 따라 나름의 규제안을 내놓았지만 여전히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에 비해서는 양적, 질적인 면에서 미흡한 수준이다.
지난해 9월 금융위 주재 관계기관 합동TF는 “모든 형태의 ICO를 금지한다"고 밝혔다. 암호화폐 업계는 ICO 전면 금지가 암호화폐 생태계의 성장을 크게 저해할 것이라며 반발했다. 금융위는 “ICO 금지를 생태계 발전 저해보다는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 봐 달라”고 주문했지만 업계의 비판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금감원도 금융위와 협력해 ‘암호화폐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을 내놓고 암호화폐 거래소를 규제하고 있다. 지난달 초 양 기관은 암호화폐 거래소와 거래하는 3개 은행(농협, 국민, 하나)을 대상으로 현장 점검을 실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정부 규제가 글로벌 트렌드는 고사하고 국내 업계 변화 속도에도 한참 뒤처지고 있다는 점이다. 블록체인 및 암호화폐 관련 기업과 협회, 벤처가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관련 법령은 전무한 상태고 소관 부처인 한은, 금감원도 뾰족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한 채 해외 주요국의 움직임만 주목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해외의 암호화폐 시장은 정부의 적극적 대응으로 오히려 탄력을 받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이미 지난해 4월 암호화폐를 법적 결제 수단으로 인정하며 암호화폐를 제도권에 편입시켰다. 에스토니아는 정부 차원에서 암호화폐 에스트코인(Estcoin) 발행 여부를 검토 중이다. 미국에서는 암호화폐를 증권으로 보고 ICO에 증권법을 적용하고 있으며, 호주는 모든 암호화폐 거래소를 돈세탁 규제당국(AUSTRAC)에 등록하게 해 감시하고 있다.
주요국들의 활발한 움직임을 보면 한국 정부 계획의 미흡함이 도드라진다. 업계는 한목소리로 “정부가 나서 기술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정부는 근 1년째 기술 검토 및 실험 단계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전하진 한국블록체인협회 자율규제위원장은 “블록체인으로 향후 5년이면 세상이 달라질 텐데 우리 정부는 완전히 손을 놓고 방치하고 있다”며 “(협회로서) 우리가 스스로 암호화폐 생태계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룰을 만들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유독 느린 국내 법 체계를 영국과 같이 신산업을 받아들이는 데 유리한 관습법 체계로 바꾸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핀테크 강국인 영국은 사회적 관행을 법제화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어 과감한 혁신과 규제 개선이 훨씬 용이하다는 견해이다.
한은은 지난달 30일 발표한 ‘2017 지급결제 보고서’에서 '동전 없는 사회' 시범사업의 일환으로 암호화폐 육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은은 주요국들의 동향을 주시하며 소비자 보호, 불법행위 방지, 공정 과세 등의 원칙에 따라 암호화폐 시장을 규제해 나갈 것을 시사했다. 또한 5~6월 중 암호화폐 관련 연구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라, 이에 따라 정부의 암호화폐 규제 전략이 윤곽을 드러내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이 조심스럽게 표출되고 있다.
신예진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