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은행들이 서서히 암호화폐를 취급하고 나섰다. 단순히 수익 창출을 위한 투자의 목적으로 암호화폐에 관심을 보였던 금융 투자회사들과는 달리 암호화폐 지갑을 직접 서비스하는 등 암호화폐를 취급 자산으로 포함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022년 1월 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외에 글로벌 주요 은행들이 최근 암호화폐를 취급하기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는 “글로벌 은행들은 지금까지 암호화폐에 대한 관심이 사라질 것이라 기대하며 방관해왔다”며 “하지만 규제 기관과 은행들을 놀라게 할 정도로 암호화폐 열풍이 오래 지속되자 은행들도 암호화폐를 취급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주요 은행 중 암호화폐에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은 스페인의 BBVA(Banco Bilbao Vizcaya Argentaria SA)이다. 스페인에서는 두 번째로 큰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금융기관이며, 스페인을 비롯해 남아메리카와 터키 등에서 주로 이용되고 있다. BBVA는 지난 2020년 12월 처음 암호화폐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BBVA 고객들은 디지털 계정을 통해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등 암호화폐를 보유하고 구매하거나 판매할 수 있다.
호주 최대 은행인 커먼웰스은행(Commonwealth Bank of Australia)도 BBVA와 유사한 암호화폐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파일럿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커먼웰스은행은 암호화폐 거래소 제미니(Gemini)와 블록체인 분석 기업인 체이널리시스(Chainalysis)와의 협약을 통해 고객들에게 암호화폐 관련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독일에서는 전체 인구 약 8000만 명 중 5000만 명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저축은행그룹이 암호화폐 지갑 서비스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WSJ은 “독일의 경우 전 세계적으로도 금융과 관련해서는 상당히 보수적인 국가로 분류되는데, 저축은행그룹이 암호화폐 지갑을 서비스하게 된다면 이는 암호화폐가 일반화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에서는 금융 대기업이 뉴욕멜론은행이 기관들을 대상으로 암호화폐 수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피델리티 자산운용(Fidelity Investments)도 기관 고객에 대해서 헤지 펀드 등을 운영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은행들과는 달리 미국의 전통적인 시중은행들은 여전히 암호화폐에 대해서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WSJ는 이에 대해 “암호화폐의 존재 이유는 은행 등 중앙화된 금융 시스템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은행들이 환영하기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2022년을 기점으로 미국의 시중은행들 역시 태도를 바꿀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로이터 통신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최고 규제 기관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은행들이 암호화폐를 보유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2021년 10월 26일 로이터와 인터뷰를 진행한 옐레나 맥윌리엄스(Jelena McWilliams) FDIC 의장은 “금융당국은 미국의 은행들이 암호화폐 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로드맵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맥윌리엄스 의장의 이런 의견은 암호화폐를 보다 효율적으로 규제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맥윌리엄스 의장은 “위험을 적절하게 완화하면서 관리하기 위해 암호화폐를 은행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암호화폐를 은행에서 취급하지 않는다면, 은행 외부에서 발전할 것이고 규제 기관은 이를 규제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시중은행의 암호화폐 관련 서비스는 다소 제한적으로 제공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BBVA나 커먼웰스은행의 암호화폐 서비스는 바이낸스와 같은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제공하는 파생상품 등은 포함돼 있지 않으며, 지갑 간의 암호화폐 이동이 다소 제한적이다. 이에 대해 WSJ는 “자산의 출처를 보다 잘 추적하기 위한 자금세탁방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