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제은행(BIS)은 탈중앙화금융(디파이, DeFi)의 위험성을 언급하며 “분산 금융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분석했다.
2021년 12월 6일(현지시간) BIS는 분기별 리뷰 보고서를 통해 취약점이 분명한 디파이에 규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비은행 금융중개기관(Non-bank financial intermediaries, NBFI)의 현황을 살펴보고 이와 관련된 정책적 관점을 제시하는 해당 보고서에서 NBFI의 일부인 디파이에 대한 분석이 이뤄졌다.
기존 금융시스템에서 가장 핵심 역할을 맡아왔던 은행이나 거래소 등 전통적인 중개자를 대체하기 위해 등장한 디파이는 다양한 업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분야 중 하나이다. 디파이는 특정 조건이 충족되면 계약을 자동 실행하는 블록체인 기반 스마트 컨트랙트를 활용해 전통적인 금융 중개자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되고 있다.
실제로 디파이 시장은 꾸준히 성장해오고 있다.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12월 3일 기준 디파이 시장의 규모는 1620억 달러(약 191조 원)로 4월과 비교해 26% 증가한 수준이다.
탈중앙화, 환상에 불과해
BIS는 디파이에 대해 “디파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탈중앙화를 주장하겠지만, 어떤 형태로든 중앙 집중화는 불가피하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탈중앙화는 ‘환상(illusion)’이고, 디파이의 일부 기능과 전략적 운영을 위해 중앙 집중식 거버넌스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디파이가 금융 중재자로서의 역할 등에서 경제적 효용성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BIS는 “이론적으로 디파이는 전통적 금융 활동을 보완할 잠재력이 있지만 현재로서는 암호화폐의 투자와 차익거래만을 지원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신현송 BIS 경제고문 및 조사국장 역시 기자간담회에서 “보고서에 따르면 디파이는 순전히 자동화된 거래만 가능하고 이외 전반적인 금융 시스템으로 운영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라며 “디파이는 개편이 필요한 순간이 있을 것이고 지금의 시스템으로 디파이가 어디까지 서비스할 수 있을지는 우리가 신중히 지켜봐야 할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BIS는 빠른 성장에도 불구하고 디파이가 금융 시스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은 낮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디파이가 지금보다 더 널리 퍼지게 된다면 디파이의 심각한 취약점으로 인해 문제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가장 큰 취약점은 중개자가 없는 대출 프로그램과 고정된 가치를 지니는 스테이블코인의 유동성 문제에서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디파이 플랫폼 간의 상호 연결성, 잠재적 위험의 충격을 흡수할 은행의 부재 등을 꼽았다.
BIS는 이런 위험성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 디파이의 거버넌스 토큰 도입과 탈중앙자율조직(DAO, decentralised autonomous organisation)의 디파이 감독권 부여를 꼽았다. 거버넌스 토큰은 일반적인 암호화폐와 달리 디파이에서 투표권으로 기능한다. 거버넌스 토큰 보유자는 디파이 시스템의 변경사항 등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신 국장은 규제 당국이 이를 통해 소비자보호, 자금세탁 및 범죄 활동 예방, 금융안정성 등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 국장은 “디파이를 금융 시장 인프라의 일부로 판단하는 것은 우리가 이를 어떻게 보는가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디파이 취약점 분명하지만 이점 있어”
BIS는 디파이의 취약점에 대해 자세히 분석했다. 특히 몇 안 되는 소수의 대형 투자자들에게 디파이의 결정 권한이 집중될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인위적인 거래로 디파이 블록체인을 혼잡하게 만들거나 내부자 거래의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디파이 플랫폼을 통한 대출은 일반적으로 과도한 담보로 이뤄지는데, 이는 대출받은 금액이 담보의 가치보다 적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한번 대출 받은 암호화폐를 다른 디파이의 담보로 활용할 수 있어 투자자들은 더욱 많은 담보와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는 암호화폐 시장의 하락장이 닥쳤을 당시 투자자들에게 큰 압력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디파이 플랫폼에서 기축통화로 활용되고 있는 스테이블코인의 취약성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BIS는 테더(USDT)와 같은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유동성 없는 단기 증권’이 어음으로 뒷받침되기 때문에 ‘유동성 불일치’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특수한 상황에 스테이블코인의 가치가 폭락할 경우 디파이 플랫폼은 기존의 은행처럼 위기 상황을 대처할 수 있는 유동성을 제공할 수단이 없다는 설명이다.
BIS는 디파이에 대해 “분명 취약점이 많지만 잠재적으로 기존 금융 시스템과 암호화폐를 연결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디파이에 대한 규제와 보호는 혁신적인 잠재력이 금융 시장에 전반적으로 이점을 가져오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