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각자 발의한 디지털자산 관련 법안의 비용추계가 큰 차이를 보이면서 장차 확립될 '디지털자산기본법'의 재정적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재 여당인 국민의힘에서는 지난해 10월 31일 윤창현 의원 등 11인이 '디지털자산 시장의 공정성 회복과 안심거래 환경 조성을 위한 법률안(이하 국민의힘 안)'을 발의한 상태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7월 14일 민병덕 의원 등 11인이 '디지털자산거래법안(이하 민주당 안)'을 발의해 심의를 받는 중이다.
이 중 국민의힘 안은 디지털자산 불공정거래를 예방함으로써 이용자 자산을 보호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자연스레 디지털자산시장 전반에 대한 기본 규제 확립을 시도하는 민주당 안에 비해 규제 대상은 좁고 법안 시행에 따른 총 사업 규모도 작다.
그럼에도 두 법안의 비용추계서를 비교해보면 국민의힘 안 시행을 위한 추계 비용은 총 201억원으로, 민주당 안 비용추계서에 기술된 최소금액 12억원의 16배가 넘는 금액이다.
사진 = 국민의힘 안 비용추계서(왼쪽)와 민주당 안 비용추계서(오른쪽) / 국회예산정책처
이러한 비용 차이는 국회에서 민주당 안에 따른 추가재정소요 중 추계가 곤란한 조문을 제외하고 일부 사항에 대해서만 추계한 까닭이다.
특히 민주당 안 중 디지털자산시장 내 사업자 감독·검사·통합정보시스템 구축 등 핵심 규제를 시행할 비용은 비용 추계가 곤란하다는 이유로 추가재정소요에서 제외되면서 전체 비용은 추계된 금액을 상회할 예정이다.
법안 비용추계를 맡은 국회예산정책처는 민주당 안 비용추계서를 통해 "(민주당) 제정안에 따르면, 디지털자산금융산업진흥원에서 디지털자산금융사업자에 대한 검사·감독·관리·보고·조사 업무를 진행한다"며 "현 시점에서 디지털자산금융산업진흥원의 설립 규모와 사업 범위 등을 예측할 수 없어 추가재정소요를 합리적으로 추계하기 곤란하다"고 기술했다.
법률안에서 '디지털자산'을 광범위하게 정의한 까닭에 업계 규모가 파악되지 않아 비용 추계가 어렵다는 설명이다. 해당 법안에 따르면 대체불가토큰(NFT) 역시 디지털자산으로 취급되는데 현재 국내에는 대체불가토큰(NFT) 관련 사업자 수와 사업규모에 관한 공신력 있는 통계가 없다.
아울러 국회예산정책처는 보고서에서 "민주당 안에 따르면 정부는 디지털자산 금융산업에 필요한 인력을 발굴·육성하기 위해 전문인력의 수급 전망·양성·훈련과 재교육·전문교육기관의 확충과 지원 등의 시책을 마련하도록 하고 있어 추가재정소요가 예상된다"며 "추가재정소요를 추계하기 위해서는 전문인력 양성·공급 대상자 수와 지원 규모 등을 파악해야 하는데, 현 시점에서는 디지털자산금융산업 발전에 필요한 전문인력의 수요를 파악하기 어려워 추가재정소요의 추계가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세부 조문·사업 범위·참고 사례 등 양 법안의 비용 산정 기준이 다른 점도 비용 차이에 영향을 끼쳤다. 양측 법안이 디지털자산사업자에 대한 감독·검사을 전담할 조직의 신설에 대해서는 동의하면서도 해당 조직의 규모에 대해 서로 다른 안을 내놓은 것이 한 예다.
국민의힘 안은 신설 조직규모를 3개과, 1개팀으로 이뤄진 금융위원회의 자본시장정책관 정도로 가정해 인건비·기본경비·자산취득비를 산출했다. 국민의힘 안은 신설 조직을 구성하는 28인의 직급별 보수를 감안해 신규 조직 신설에 따른 추가재정소요를 향후 5년간 약 136억원으로 예상했다.
이에 반해 민주당 안에서 예상한 조직 신설에 따른 추가재정소요는 향후 5년간 약 9억원에 그쳤다. 신설되는 조직의 상임위원을 1명만 배정하고 그의 보수와 조직 운영비만 비용으로 계산한 결과다.
사진 = 민주당 안의 항목별 재정수반요인. 비용추계가 곤란한 항목이 대부분이다. / 국회예산정책처
재정이 수반되는 모든 법안은 국회 본회의 통과 후에도 예산이 배정되지 않으면 법안이 규정하는 사업 시행에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같은 상황에서 법률안의 상당 부분이 집행 시 예산 규모도 파악되지 않은 채 논의가 계속되면 재정 불확실성을 비롯해 법안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계에서는 국회에서 재정 수반 법률안을 제출할 때 비용 검토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현실을 지적하며 이를 개선할 제도적 방안이 제기되고 있다.
류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지난 2021년 국회예산정책처에 제출한 보고서 '법안비용추계와 탑다운식 예산안 심의과정'에서 "비용추계와 별개로 마지막에는 기획재정부에서 전체 예산에 맞추어 해당 법률안에 소요되는 비용이 조정될 것이기에 법률안 제출 단계에서부터 비용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국회의원실의 입장이다"고 말했다.
그는 해당 보고서에서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종합 정책질의나 부별 심사 단계에서 재정 총량의 고려와 같은 거시적인 질의와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고, 예산안등조정소위원회에서도 상임위원회의 예비심사와 비슷하게 미시적인 예산심사가 반복되고 있다"고 첨언했다.
류철 교수는 이를 개선할 대안으로 미국에서 시행 중인 하향식(Top Down) 예산안 심의를 제안했다. 그는 보고서에서 "미국의 경우 예산결의안이 작성되면 연방의회는 의무지출·재량지출·수입·부채에 대한 법률안을 모두 예산안 심의과정에 통합시켜서 심사한다"며 "이러한 제도적 맥락에서 재정수반 법률안들은 다른 재 정수반 법률안들과 비용 경쟁을 할 수밖에 없고, 연방의회 의원들은 재정수반 법률안을 발의할 때부터 해당 법률안에 대한 비용추계 정보를 민감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의견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