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에 걸쳐 소비자 지출 데이터를 축적한 익스페리언(Experian)은 세계 10억 명 이상의 개인과 2,500만 개 미국 기업 관련 정보를 보유한 신용평가사다. 트랜스유니언, 에퀴팩스와 함께 ‘빅3’ 신용평가사로 불리는 이 회사는 과거 금융기관이 대출 여부를 결정하는 데 핵심적인 데이터를 제공해 왔지만, 이제 그 정체성을 데이터 기반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전환하고 있다.
2019년부터 익스페리언은 자사의 방대한 신용 데이터를 바탕으로 소프트웨어와 데이터 분석 사업에 뛰어들었고, 현재는 전체 매출의 35%를 이 부문에서 올리고 있다. 지난해 선보인 *Ascend 플랫폼*은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구축된 신용 분석 솔루션으로, 데이터 처리, 모델 개발, 부정 행위 탐지, 대출 리스크 진단 등 금융∙헬스케어∙자동차∙디지털 마케팅 분야를 포괄하는 통합 서비스를 제공한다. 현재 미국 내 80여 개 대기업과 8,000여 명의 데이터 과학자들이 이 플랫폼을 활용하고 있다.
익스페리언의 전환의 핵심은 방대한 데이터를 정제하고 분석 가능한 형태로 전환하는 자동화 능력이다. 과거에는 대출 리스크 모델을 수작업으로 구축해야 했지만, Ascend는 이를 코드 기반 분석 환경과 AI 도구를 통해 자동화하면서 규제 대응 속도도 크게 높였다. 특히 지난해 도입된 생성형 AI 기반 ‘익스페리언 어시스턴트’는 모델 개발, 코드 최적화, 규제 문서 생성까지 지원하며 현업 데이터 과학자의 생산성을 최대 60%까지 끌어올렸다는 내부 평가도 있다.
또한 머신러닝 모델의 성능 하락, 이른바 ‘모델 드리프트’를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그 원인을 파악해 개선 방향을 제시하는 기능도 이번 전환의 주요 성과 중 하나다. 여기에 위조 이메일 또는 스팸과 같은 특정 트리거를 연결한 사기 탐지 지도를 제공해 사기 가능성을 시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능도 포함됐다.
그뿐만 아니라 Ascend는 금융기관들이 대출을 거절한 지원자의 신용도를 추정하는 ‘거절 추론(Reject Inferencing)’ 모델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해 모델의 *편향*도 줄이고 있다. 이는 기존 모델이 승인된 대출자 데이터만 반영하는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다.
이러한 기술력의 기반은 익스페리언 고유의 데이터와 미국 연방준비제도 및 재무부 통제국이 요구하는 SR 11-7 가이드라인 등 금융 규제 체계에 특화된 AI 모델 학습에서 비롯됐다. 이를 통해 고객사의 내부 규정에 맞는 문서화 작업까지 자동으로 처리할 수 있어, 모델 배포 시 가장 시간이 많이 걸리는 ‘컴플라이언스’ 과정을 신속하게 단축시켰다.
익스페리언 측은 자사의 전략적 목표를 신용 분석에 특화된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고도화된 AI 기반 분석 플랫폼을 통해 기존 신용평가사 이미지를 벗고, 데이터 중심의 금융 솔루션 회사로 자리매김하겠다는 포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