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반도체 규제가 다시 고삐를 죔에 따라 엔비디아(NVDA)와 AMD(AMD)를 비롯한 테크 기업들이 격한 주가 하락을 겪고 있다. 특히 엔비디아는 중국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수출 제한 조치로 인해 55억 달러(약 7조 9,200억 원)의 감액 손실을 예고하면서 이틀 연속 급락세를 이어갔다.
17일(현지시간) 미국 증시는 전반적으로 하락세를 기록했으며, S&P500 지수에서는 정보기술 업종이 가장 큰 낙폭을 나타냈다. 엔비디아 주가는 전일 7%에 가까운 하락에 이어 이날도 추가로 3% 넘게 하락하며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에서 가장 두드러진 약세 종목으로 꼽혔다. AMD 역시 1% 가까이 떨어졌고 마이크론(MU), 브로드컴(AVGO), 슈퍼 마이크로컴퓨터(SMCI) 등 반도체 관련주는 일제히 하방 압력에 놓였다.
이번 하락의 핵심은 미국 정부가 강화한 중국 수출 규제로, 특히 인공지능(AI) 기능이 탑재된 고성능 반도체 H20을 둘러싼 제한 조치에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메모에서 "이번 규제는 반도체 뿐 아니라 네트워크, 광통신 부문에 걸쳐 있는 주요 AI 관련주 전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동시에 이들 기업이 향후 미국 정부로부터 예외 승인을 받을 가능성이 낮다고 봤으며, 5월부터 새롭게 시행될 AI 확산 규제가 추가적인 판매 제한을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웨드부시 역시 투자자 노트를 통해 "당분간 기술기업들이 실적 가이던스를 내놓기 어려운 국면"이라며 불확실성의 터널을 지적했다. 이어 "이번 조치는 놀라운 일은 아니며, 현재 미중 간 무역전쟁이 한창 진행 중임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양국 간 충돌이 더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엔비디아나 AMD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미국 반도체 업계 전반이 지정학적 긴장에 휘말리면서, 기술주 중심의 미국 증시에 파장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AI 하드웨어가 미국의 수출 통제 정책의 핵심 축으로 떠오르면서, 향후 글로벌 공급망이 구조적으로 재편될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일시 연기했던 규제 강화 방침을 다시 단행한 점도 이번 혼란의 원인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시장은 미중 간 기술 패권 경쟁이 이제 단기 이슈를 넘어, 장기적인 투자 환경 자체를 재편할 수 있는 수준으로 비화하고 있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