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發 엔비디아 수출 제한…中향 GPU 55억 달러 손실

| 김민준 기자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NVDA)가 중국 수출용으로 제작한 H20 그래픽처리장치(GPU)에 대해 미국 정부가 추가 수출제한 조치를 단행하면서 55억 달러(약 7조 9,000억 원) 규모의 손실을 떠안게 됐다. 이번 조치는 트럼프 대통령 행정부의 승인 아래 시행됐으며, 미·중 간 반도체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엔비디아 성장세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엔비디아는 15일(현지시간)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공시에서, 향후 중국 수출을 위한 H20 칩에 대해 ‘무기한’ 라이선스를 요구받았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몇 년간 중국을 겨냥해 단계적으로 강화된 미국의 반도체 제재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최근 시행된 새로운 규제는 H20 제품이 중국의 슈퍼컴퓨터 개발에 전용될 수도 있다는 우려에 따라 결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 인해 H20 재고 및 관련 구매 계약에 기반한 회계상 손실이 55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며, 이에 따라 엔비디아 주가는 시간 외 거래에서 6% 넘게 급락했다. 경쟁사인 AMD(AMD)의 주가도 동반 하락했다.

H20 칩은 AI 연산용 고성능 GPU인 H100 및 H200과 유사한 구조를 갖지만, 중국 시장에 맞춰 처리속도와 대역폭을 낮춘 형태다. 엔비디아는 바이든 행정부 시절 설정된 수출 규제에 맞춰 H20을 신중히 설계했고, 2024년에는 이 제품만으로 약 120억~150억 달러(약 17조 2,800억~21조 6,0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이 제품조차도 중국 AI 기업의 군사용 전용 가능성을 우려해 제동을 건 것이다.

실제로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는 합리적 추론 기반의 대규모 언어모델을 개발하며 미국 오픈AI와 동등한 성능을 입증했는데, 해당 모델 역시 H20 GPU를 활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H20조차 전략물자로 간주하려는 워싱턴의 시각을 보여준다.

엔비디아 황젠슨(Jensen Huang) CEO는 지난 2월 실적발표에서 “중국 매출은 수출 제한 이후 절반 수준으로 줄었고, 현지 경쟁사들이 빠르게 따라잡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중국은 엔비디아 전체 매출 기준으로 미국, 싱가포르, 대만에 이은 4위 시장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체 GPU 판매량의 절반 이상이 미국 내 고객에 집중된 반면, 중국 비중은 지속 감소세다.

올해 들어 엔비디아 주가는 트럼프 대통령이 단행한 중국 등 주요 교역국 대상 관세 강화의 영향으로 약 16% 이상 하락했으며, 이번 H20 규제 영향이 반영되면서 하방압력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최근 일부 전자제품에 대한 관세 유예 조치가 발표되긴 했지만, 이는 일시적 조치에 불과하며 기술제품에 특화된 추가 관세가 조만간 부과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이번 움직임은 트럼프 행정부가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 기술 견제 기조를 계승하면서, 중국을 겨냥한 반도체 전략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시사하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엔비디아의 성장 축이었던 AI 반도체 공급망이 지정학적 변수에 의해 언제든 흔들릴 수 있음을 다시 한번 체감하게 된 사례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