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B, 트럼프 친암호화폐 정책에 '금융 전염' 경고…EU 통화주권 흔들 우려

| 유서연 기자

유럽중앙은행(ECB)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암호화폐 친화적 정책이 유럽연합(EU)의 통화 주권과 금융 안정성을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CB는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유럽 시장 확산 가능성을 '전염 위험'으로 규정하고, 현행 MiCA 규제의 한계를 지적하며 EU 차원의 대응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22일(현지시간) 크립토슬레이트에 따르면, 유럽중앙은행(ECB)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암호화폐 확대 정책이 유로존의 금융 주권에 심각한 위협을 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ECB는 최근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가 입수한 비공개 정책 문건에서,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중심 개혁이 MiCA(암호자산시장법) 체계의 허점을 통해 유럽 시장을 침투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ECB는 특히 미국 의회에서 논의 중인 STABLE법과 GENIUS법이 시행될 경우,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글로벌 공급량이 현재 약 2400억 달러에서 2028년까지 2조 달러로 급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유럽 내 저축이 유로에서 달러로 이동하고, 유럽 은행들은 환매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와 디지털결제 부문 책임자인 피에로 치폴로네는 미국 스테이블코인의 유럽 시장 지배가 EU 금융의 ‘과잉 달러화’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CB는 특히 MiCA가 허용하고 있는 ‘다중 발행(multi-issuance)’ 구조가 비유럽계 발행사에게 유리한 과점 시장을 조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는 강하게 반박했다. EC는 자체 보고서를 통해 ECB의 해석이 과장되었으며, MiCA는 이미 외국계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충분한 대응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테더(USDT)와 같은 스테이블코인의 일부 거래소 상장폐지를 예로 들며 규제 효과를 입증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EC는 MiCA 하에서 승인된 글로벌 스테이블코인은 현재 단 1종에 불과하며, ECB는 언제든지 통화정책이나 결제 시스템 안정성을 위협하는 토큰에 대해 발행 차단 권한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양측은 의견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트럼프 행정부의 암호화폐 정책이 국제 통화 질서에 미치는 파장을 의식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입장을 같이했다.

이번 논란은 EU 내부에서 미국 중심의 디지털 자산 확산에 대한 전략적 불안감을 반영하며, 유럽이 독자적인 금융 및 통화 주권을 유지하기 위한 규제 체계 정비에 박차를 가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