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통 견디는 스타트업의 조건… '혁신보다 전략적 유연성'

| 김민준 기자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시장의 관심을 받으며 초기 투자를 유치해낸 스타트업이라 해도, 진짜 과제는 이후에 찾아온다. 스타트업의 7.4%만이 시드 투자를 넘어서 시리즈 A 단계까지 도달한다는 점에서, 성장은 곧 생존이자 경쟁이다. 특히 성장 단계에 진입한 기업들은 고객 확대, 팀 빌딩, 운영 최적화 등 전혀 새로운 난제를 맞닥뜨린다. 그런 점에서 성장통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은 스타트업 창업자들에게 실질적인 생존 지침이 된다.

영국 챌린저 뱅크 몬조(Monzo)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AI 스타트업 그라디언트랩스(Gradient Labs)를 이끌고 있는 디미트리 마신(Dimitri Masin)은, 스케일업의 가장 큰 함정은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겠다’는 창업자들의 강박이라고 지적한다. 혁신이 곧 기업의 생존 도구처럼 여겨지는 초기 환경에선 이해할 수 있는 태도지만, 제한된 자원과 인력 속에서 모든 영역을 새롭게 시도하려 할 경우 오히려 성장을 해칠 수 있다. 검증된 구조와 포맷을 유연하게 차용하고, 진짜 차별화가 필요한 분야에 역량을 집중하는 판단이 필요하다는 것이 마신의 조언이다.

투명성과 커뮤니케이션 방식도 성장 단계에 맞게 달라져야 한다. 마신은 몬조에서 내부 모든 대화를 공유하는 ‘급진적 투명성(radical transparency)’을 실험했지만, 규모가 커지면서 정보 과잉에 따른 효율 저하를 경험했다. 이후 적시성 있는 핵심 정보 전달 중심으로 전략을 바꾸며, 투명성과 생산성의 균형을 맞추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즉, 내부 커뮤니케이션은 ‘얼마나 많은 정보를 공유하느냐’보다 ‘누구에게 어떤 정보를 전달하느냐’가 관건이라는 이야기다.

인재 확보는 성장 성공의 절대 변수다. 스타트업 초기엔 재무 여력상 인건비를 절감하려는 유혹이 크지만, 마신은 장기적 관점에서 최고 수준의 인재에 대한 적정한 보상을 강조한다.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난 인재는 단순히 기술적 완성도만을 높이지 않고, 서비스의 고도화 속도를 끌어올리는 핵심 동력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다. 예컨대 AI 기반 사기방지 플랫폼을 만든다면, 단순히 알고리즘 능력을 넘어서 해당 업계의 내부 흐름과 정책을 이해하는 전문가가 진짜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창업자 자신이 감당해야 할 정신적 피로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예기치 못한 법적 규제, 핵심 직원의 이탈, 투자자 철회 등의 대형 이슈는 순식간에 발생한다. 실제로 2024년 조사에 따르면 창업자의 61%가 한때 사업을 접을 마음을 먹었다는 결과가 있다. 이런 불확실성을 뛰어넘기 위해선 회복탄력성(resilience), 즉 위기에 흔들리더라도 다시 중심을 잡고 방향을 재설정할 수 있는 내공이 핵심 역량으로 작용한다.

그렇기에 마신은 말한다. 혁신도, 성장도 개인의 천재성만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이미 수많은 창업자들이 마주했던 시행착오 속에서 배우고, 필요할 땐 기존 방식을 전략적으로 수용하는 유연함이 결국 유니콘으로 가는 길을 열어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