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구글은 최근 ‘A2A(Agent-to-Agent)’라는 개념을 공식화하며, AI 에이전트들이 인간의 개입 없이 상호작용하고 업무를 수행하는 미래를 선언했다. AI는 이제 단순한 도구가 아닌, 판단하고 협상하며 결과를 산출하는 실체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비탈릭 부테린 이더리움 창시자는 AI와 인간의 관계를 다시 정의하고 있다. 그는 AI를 “엔진”, 인간을 “조타수”에 비유하며, AI가 강력한 계산력으로 방향을 제시하더라도 최종 판단과 윤리적 결정은 인간이 내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술의 진보가 통제를 넘어설 때, 그것을 붙잡아줄 조타 장치가 바로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AI가 빠르게 중앙화된 대규모 플랫폼 속에서 진화하고 있다는 데 있다. 데이터는 거대 기업에 집중되고, AI는 점점 인간의 얼굴을 흉내 내며 '진짜 인간'과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이때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이 바로 'humanhood', 즉 디지털 세계에서 인간으로서의 자격과 존엄이다.
바로 여기에서 블록체인의 역할이 다시 부각된다. 블록체인은 '누가 말했는가'를 검증하고, '그 말이 어디서 나왔는가'를 추적할 수 있는 투명한 인프라다. 프라이버시를 지키며 신뢰를 증명할 수 있는 영지식증명(Zero Knowledge) 기술은, AI 시대에도 인간의 권한과 신뢰를 보호할 수 있는 유력한 해법이 된다. AI가 무기한 확장되는 시대에, 블록체인은 인간 주권의 마지막 방어선이 될 수 있다.
디지털 주권은 더 이상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개개인이 온라인 공간에서 자신의 존재와 의지를 지킬 수 있느냐의 문제다. 그 주권은 프라이버시 위에, 신뢰 기술 위에, 그리고 블록체인의 설계 위에 세워진다.
한국은 AI 도입과 규제 논의에서 빠르게 움직이고 있지만, AI와 블록체인이 교차하는 신뢰 인프라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부족하다. 신뢰는 제도만으로 구축되지 않는다. 기술적 토대를 갖추고 사회적 합의를 더해야 한다.
AI가 논리와 연산을 책임질 시대, 인간은 방향과 윤리를 책임져야 한다. 우리는 지금, 디지털 인간으로서의 존엄(humanhood)과 자율, 그리고 신뢰를 어떤 구조 위에 세울지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그 구조는 AI가 아닌, 인간의 손으로 설계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