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세계에서 제품 개발과 시장 적합성 확보는 여전히 성공의 핵심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제품의 기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브랜드 정체성이 부족하면 치열한 경쟁 속에서 도태되기 쉽다. 브랜딩은 단순히 로고나 슬로건을 만드는 일을 넘어, 고객과 투자자, 내부 인력이 그 기업을 어떻게 인식하느냐를 결정짓는 ‘정체성’이다.
브랜드는 기업의 철학과 가치를 전달하는 수단이며, 시장 내에서의 차별화를 가능하게 한다. 맥킨지(McKinsey & Co.)에 따르면 고객과 정서적 연결을 맺은 브랜드는 신규 고객 확보율이 30% 더 높고, 고객 유지율도 60% 이상 뛰어나다. 고객과 진정한 관계를 맺은 브랜드는 고객 생애 가치 또한 평균보다 3배 이상 높으며, 추천 가능성도 평균 45% 대비 71%까지 상승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많은 창업자들이 브랜드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빠르게 돌아가는 스타트업 환경에서는 브랜딩이 ‘사치’로 밀려나는 경우가 많다. 예산 마련이 쉽지 않고, 브랜드 구축에는 창의적 사고와 전략적 시각이 필요한 데다 즉각적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많은 스타트업들이 제대로된 전략 없이 브랜드를 자체 제작하거나 단편적인 마케팅 활동에 의존해 일관성과 차별성 모두를 잃게 된다.
그러나 브랜딩을 후순위로 미루는 전략은 장기적으로 기업 가치를 잠식하는 결과를 낳는다. 런던정경대학교(LSE)의 조사에 따르면 강력한 브랜드 전략을 갖춘 기업은 5년간 시장 대비 20% 이상 높은 성과를 기록했다. 또한, 베인앤컴퍼니(Bain & Co.)는 브랜드 자산이 높은 기업이 경쟁사 대비 최대 20% 높은 제품 가격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브랜드가 충성도 높은 고객을 유치하고, 우수 인재에게 더 매력적인 이미지로 작용하며, 수익성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더구나 최근에는 ‘브랜드 적합성(brand fit)’이라는 개념이 스타트업 경영 전반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제품과 시장의 연결 고리를 찾는 ‘제품-시장 적합성(product-market fit)’만큼, 브랜드가 고객과 감성적으로 얼마나 일치하는가를 의미하는 ‘브랜드 적합성’ 역시 중요하다. 초기 단계에서 브랜드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은 개발, 채용, 세일즈 등 다수의 의사결정에 기준이 되어, 혼선을 줄이고 방향성을 제공한다.
문제는 스타트업이 그 중요성을 알아도 실행 여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대다수의 창업자들은 인간관계, 제품 개발, 자금 확보 등 다양한 업무를 병행하며 시간을 쪼개 써야 하고, 전통적인 마케팅 대행사에 의존할 경우 비용과 시간이 과도하게 소모되기도 한다. 브랜딩이 다른 업무에 비해 결과가 나오기까지 긴 시간이 걸린다는 점도 부담 요소다.
이처럼 기존 접근법이 현실과 맞지 않자, 최근에는 ‘브랜딩 스프린트(branding sprint)’가 새로운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는 수주 단위의 집중적인 프로세스를 통해, 선임급 전략가와 크리에이티브 인력이 기업의 핵심 메시지와 시각적 언어를 명확히 설정하는 방식이다. 불필요한 회의와 복잡한 절차는 생략하고, 민첩성과 전문성을 갖춘 외부팀과 단기적으로 협업해 빠르게 브랜드 기반을 다지는 것이 특징이다.
브랜딩 스프린트를 통해 스타트업은 장기 고용이나 고비용을 감내하지 않으면서도, 전략적으로 세련된 브랜드를 수립할 수 있다. 이는 대규모 조직이나 대행사와 협력할 여력이 부족한 초기 기업에게 실질적인 대안이 될 수 있으며, 제품이 아닌 이야기와 철학으로 경쟁해야 하는 시대에서, 생존의 열쇠가 된다.
결국 스타트업에게 브랜딩은 선택이 아니라 필요조건이다. 빠르고 똑똑한 접근이 뒷받침된다면, 브랜드는 단기적인 비용이 아니라 장기 경쟁력을 위한 투자로 작용할 것이다. 창업자가 시간을 쪼개 가며 직접 하지 않더라도, 집중된 방식으로 외부 전문가의 시너지를 활용한다면 그 효과는 충분하다. 이제는 브랜드 역시 초기 제품 개발만큼이나 빠르게 구축되고, 전략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