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가 경기침체(recession) 리스크에 직면해 있다는 경고가 지속되는 가운데, 도이치뱅크는 최근 발표한 분석 자료에서 미국 주식시장이 이러한 위험을 여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식, 채권, 원유 시장의 현재 움직임이 과거 경기침체 시기와 비교했을 때 지나치게 완만하다는 것이 핵심 평가다.
도이치뱅크의 수석 전략가 헨리 앨런은 “시장이 경기침체 가능성을 부분적으로만 가격에 반영하고 있으며, 이는 향후 실물 경제의 본격 둔화가 확인될 경우 자산 가격 하방 압력을 크게 만들 수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대중 무역관세가 향후 경제 흐름을 좌우할 변수로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겨냥한 보복관세의 일부 완화를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주가는 단기적으로 반등 중이지만, 실질적인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관세 발표 직후 S&P 500 지수는 최대 18.9% 급락했지만, 이는 역사적 기준으로 봤을 때 미국이 경기침체에 진입하기 전 나타났던 하락폭보다는 아직 낮은 수준이다. 채권시장에서도 고위험 채권의 신용스프레드는 397bp(1bp=0.01%) 수준으로, 팬데믹 당시의 1100bp나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의 1971bp와 비교하면 여전히 안정적인 편이다. 2022년이나 2016년처럼 경기침체가 아니면서도 시장 스트레스가 강했던 시점에도 모두 이보다 높았다는 점이 주목된다.
원유 시장도 아직 폭락 국면과는 거리가 있다. 런던 ICE 선물시장 기준 브렌트유 가격은 지난 4월 2일 이른바 ‘해방의 날’ 이후 약 13% 하락하는 데 그쳤다. 이는 코로나19 사태나 금융위기 당시 약 66%의 폭락과 비교하면 선방한 수준이다. 이를 근거로 시장은 글로벌 성장 둔화 가능성을 아직 본격 반영하지 않았다는 해석이 나온다.
앨런은 “향후 노동시장 악화 등의 실물지표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면, 투자자 심리는 급격히 냉각될 수 있다”며 “주가 재조정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중국에 대한 최종 관세율이 현행 145%에서 50~65% 수준으로 낮아질 수 있다고 발언하며 관계 개선 의지를 시사했다. 이에 따라 미중 무역갈등 완화 기대가 커지면서 뉴욕증시 주요 지수는 반등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그동안 수차례 무역정책을 번복한 전례가 있는 만큼, 시장은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일부 이코노미스트는 관세 인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이미 부과된 관세로 인해 성장둔화 리스크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향후 발표될 고용지표와 생산지표 등 핵심 경제지표들은 이러한 불확실성을 어느 정도 해소해 줄 수 있을 전망이다. 만일 고용 감소나 산업생산 위축 같은 수치들이 확인되면, 지금까지 경기침체 가능성을 외면해왔던 시장이 방향을 급격히 바꿀 위험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