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소비자 지갑 갈팡질팡… 필수품·프리미엄 소비 ‘양극화’

| 김민준 기자

미국 소비자의 지갑이 여전히 열려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기업들의 발언을 통해 엿볼 수 있는 소비 행태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물가 상승과 최근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이 단행한 전방위적 관세 부과 정책의 여파로 일부 소비자는 타격을 피하려 미리 구매에 나선 반면, 또 다른 일부는 소비를 줄이며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식료품 유통업체 앨버트슨스(ACI)는 최근 실적 발표에서 소비자 심리가 여전히 저조하다고 밝혔다. 회사 측은 여전히 대다수 고객들이 할인 혜택과 자체 브랜드 제품에 의존하며 지출을 최소화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관세 관련 뉴스에 반응해 값이 오를 수 있는 상품들을 미리 구매하는 소비심리도 포착되고 있다. 소매 유통 데이터 분석업체 패스바이에 따르면, 최근 일주일간 의류·식음료·주류 등 주요 품목의 매장 방문자 수가 동반 증가하는 이례적인 흐름이 관측됐다.

스트리밍 플랫폼 넷플릭스(NFLX)는 현재까지 구독 해지율이나 저가 요금제 전환 비중에서 변화가 뚜렷하지 않다고 밝혔다. 그렉 피터스 CEO는 “주요 지표인 구독자 유지율이 안정적인 수준”이라며 “경제 여건이 악화될 때도 엔터테인먼트 지출은 비교적 견고한 편”이라고 진단했다. 이는 경기 변동에도 콘텐츠 수요가 지속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일부 고가 소비 부문은 불안정한 분위기를 피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미국 최대 주택건설업체 D.R.호튼(DHI)의 폴 로마노프스키 CEO는 “기대에 못 미치는 봄철 주택 분양은 높은 주택 가격과 낮아진 소비자 신뢰 때문”이라며 주택 매입을 미루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고소득층을 겨냥한 여행과 프리미엄 소비는 여전히 활성화된 것으로 보인다. 유나이티드항공(UAL)은 최근 프리미엄 시트를 선호하는 부유층 고객이 여전히 견고한 수요를 보인다고 밝혔으며, 아메리칸 익스프레스(AXP) 또한 자사 회원들이 경기 불안 속에서도 소비를 지속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럭셔리 브랜드 몽클레르 역시 현재 미국 소비자들의 경제 신뢰감에 보다 집중하고 있다. 회사의 핵심 임원은 이번 실적 발표에서 “미국 소비자들의 심리는 여전히 불안정하다”고 지적했다. 그에 반해 독일 완구업체 토니스(TNIE)는 미국 시장에서 견조한 수요 흐름을 이어가고 있으며, 장난감이 경기 둔화에도 비교적 탄력적인 ‘필수 소비재’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생활필수품과 취미성 품목, 프리미엄 소비재에 따라 소비 양극화가 뚜렷히 드러나고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의 대중국 이외 전 국가 대상 관세 유예 조치에도 시장 불안 심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소비자들이 언제 다시 확실한 소비 회복세로 전환할지는 당분간 관세 정책과 경제지표의 흐름에 달려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