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소비자들이 고관세 정책에 따른 불확실성으로 지갑을 닫고 있다. 부동산 플랫폼 레드핀(Redfin)이 최근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3명 중 1명 이상이 주택이나 자동차와 같은 대규모 소비를 미루고 있으며, 약 4명 중 1명은 아예 구매 계획을 취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와 함께 관세가 소비 여건을 심각하게 악화시키고 있음을 시사한다.
레드핀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조사 응답자의 절반가량이 미국의 관세 정책이 자신들의 소비를 위축시킬 것이라고 답했다. 반면 관세로 인해 구매가 늘어날 수 있다는 응답은 10%에 불과했다. 특히 정치 성향에 따라 소비 결정에도 뚜렷한 차이가 나타났는데, 민주당 지지자의 40% 이상이 주요 지출을 미루고 있으며 3명 중 1명은 구매 계획을 완전히 접었다. 이는 공화당 지지자 중 같은 응답을 한 비율인 20%와 15%에 비해 현저히 높은 수치다.
현실적인 경제 요인도 작용하고 있다. 최근 수개월간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미국의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수요자들이 결정을 미루게 만들고 있으며, 관세로 인한 건축자재 비용 상승도 주택시장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레드핀 측은 이러한 배경 속에 경기 전망이 불투명해지면서 대다수 소비자가 예산을 축소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자동차 시장 역시 비슷한 흐름이 감지된다. 일부 소비자들은 관세 인상에 따른 자동차 가격 급등을 우려해 미리 구매에 나서고 있지만, 전반적인 수요는 둔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이는 단기적인 가수요에 불과하며, 향후 관세 효과가 본격화될 경우 구매 심리가 더욱 위축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레드핀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첸 자오(Chen Zhao)는 “현재로선 미국 내 경기 침체 가능성이 절반을 넘는다는 평가도 있다”며 “소비자들이 주택이나 자동차 같은 고비용 상품 구매에 신중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설명했다. 자오는 이어 “고용 안정성에 대한 불안과 일상생활에서의 물가 상승이 소비 심리를 위축시키고 있지만, 수요 감소가 이어질 경우 주택 가격이 보합세를 보이거나 하락하며 세제 혜택과 함께 모기지 금리도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미국 내 소매판매는 1.4% 상승하며 2023년 이후 최대 폭의 증가를 기록했다. 이는 관세 인상 전에 일시적인 소비가 몰렸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중장기적으로는 소비자 불확실성이 경제 전반에 미칠 부정적 영향이 더욱 두드러질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