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O 미루는 유니콘들…불확실한 시장에 ‘명예 퇴각’ 줄잇는다

| 김민준 기자

기업공개(IPO)는 단순히 주식을 상장하는 것이 아니라 수년간의 준비와 막대한 자금 투자가 필요한 결정이다. 이처럼 매우 신중한 과정이 요구되는 만큼 상장 일정을 미루거나 철회하는 결정도 결코 가볍게 내려지지 않는다. 최근 클라르나(Klarna), 스텁허브(StubHub) 등의 기업이 투자자 대상 IPO 로드쇼를 연기하며 시장 상황을 이유로 꼽은 사례는 현 시장 분위기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IPO 일정 지연은 종종 시장 불확실성이 주요 원인이다.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가 사상 세 번째로 큰 하루 하락폭을 기록한 시점에 상장을 추진할 수 있는 기업은 드물다. 이와 같이 부정적인 뉴스가 쏟아지는 와중에 대중 앞에 나선다면 공모 성과는 물론 향후 평판에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시장 전문가들은 IPO가 한 차례 연기될 경우 언제든 재개될 가능성은 있지만, 시간이 길어질수록 상장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경고한다. 제이 리터(Jay Ritter) 플로리다대 명예교수는 “공개 서류를 제출한 뒤 오랜 시일이 흐르고 나서야 성공적으로 상장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고 지적했다. 콘스트럭션 테크 기업 프로코어(Procore)가 대표적인 예외 사례로, 처음 서류를 제출한 이후 1년 넘게 기다린 끝에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에 성공했지만, 이는 이례적이다.

반면, 위워크(WeWork)의 경우 상장 계획을 공식화했다가 투자자 신뢰 붕괴로 철회하고 결국 우회상장(SPAC)을 택했으나, 이후 파산 보호 신청에 이르렀다. 이러한 전례는 IPO 일정 장기 연기의 위험성을 명확히 보여준다.

더 자주 등장하는 흐름은 공개 서류 제출 자체를 지연하는 경우다. 에어비앤비(Airbnb)는 2020년 팬데믹 확산 초기에 상장을 미루었다가 2021년 말 성공적으로 상장했고, 인스타카트(Instacart)는 비공개로 서류를 제출한 뒤 1년 넘게 공식 서류 공개 시점을 조정했다. 최근에는 AI 칩스타트업 세레브라스(Cerebras Systems)가 상장 요건 심사와 정부 보안 검토를 이유로 데뷔를 보류 중이다. 디지털 은행 차임(Chime) 또한 비공개 서류를 제출했지만 아직 공모 문서를 공개하지 않았다.

기업이 IPO 계획을 미루기만 한다면 상황 변화에 따라 기회를 다시 모색할 수 있지만, 철회를 결정할 경우 그 파장은 길게 간다. 재시도 가능성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자로드 험프리(Jarrod Humphrey) 세인트 자비에르 대 교수는 IPO 철회에 대한 연구를 인용해 “상장 포기는 해당 기업에 일종의 낙인을 남기며 재도전 기회를 현저히 낮출 뿐 아니라 성장 자금 조달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그는 1997년부터 2021년까지 나스닥과 뉴욕증권거래소에 제출된 상장 계획 중 약 6건 중 1건이 철회됐다고 밝혔다.

최근 가장 주목받은 예로는 차량 공유 플랫폼 투로(Turo)가 있다. 투로는 2022년부터 상장을 준비해왔으나, 올해 초 발생한 외부 사건이 기업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치면서 결국 IPO를 철회했다. 이처럼 계획된 상장을 중단한 사례들이 잇따르고 있어, 향후 IPO 시장에 대한 전망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다만 기술주 중심 지수들이 최근 단기 저점 대비 반등한 것은 회복의 조짐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만약 이 회복세가 지속된다면, 지금 미뤄진 IPO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가능성도 없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