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허락 없이 레딧 사용자 심리 조작 실험… 학계 윤리 논란 확산

| 김민준 기자

취리히대학교 연구진이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실험을 레딧(Reddit) 커뮤니티에서 무단으로 진행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해당 실험은 ‘r/changemyview’라는 레딧 토론 게시판에서 장장 4개월 동안 진행됐으며, AI가 생성한 댓글을 통해 이용자들의 의견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를 관찰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이 사용자와 관리자에게 한 차례도 고지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윤리적 문제 제기가 거세다.

4월 26일 공개된 게시판 관리자 공지에 따르면, 연구진은 다양한 인격을 가장한 AI 계정을 운영했다. 피해자 지원 전문가, 성폭력 생존자, 특정 사회 운동에 반대하는 사람 등 실제 이용자라면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설정이 대거 포함돼 있었다. 게시판 운영진은 “이 커뮤니티는 사람이 중심이며, 고지 없는 AI 개입은 근본 가치를 훼손한 것”이라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문제의 실험은 게시물 작성자의 과거 활동 내역을 분석해 정치 성향, 성별, 나이, 인종 등의 정보를 추정하고, 이에 맞는 AI 댓글을 생성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와 관련된 논문 초안에는 연구진이 AI 개입을 통해 사용자 의견을 미세하게 조정하려 했다는 정황이 구체적으로 담겼다.

이번 사태는 AI 기술의 사회적 책임과 연구 윤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제기하고 있다. 특히, 민감한 주제가 논의되는 공간에서 허락 없이 데이터를 수집하거나 개입한 행위는 단순한 실험 윤리 위반을 넘어 이용자에 대한 신뢰 침해로 해석될 수 있다.

AI 기술이 점점 정교해지는 가운데, 학계의 실험조차 별도의 거버넌스 체계나 명확한 기준 없이 진행될 수 있다는 현실은 향후 디지털 사회에서의 사생활 보호와 인간 존엄성에 대한 우려를 더욱 키우고 있다.